이번 달 용돈을 어디에 써야 할까
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결정했어요


작년 말부터 포켓몬 향수에 취해서
3DS로 에뮬도 돌리고 GBA랑 스위치도 사고 (샤이닝 펄도 해버리고)
별 짓을 다했지만 그때 그 감성을 느끼기에는 2%가 부족했다.
GBA마저도 너무 21세기스러웠달까.
존재하지도 않았던 그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서는
그때 그 게임기, 그때 그 게임팩이 필요했던 것이다.
그러나 오래된 와인이 고가에 팔리는 것처럼,
요놈들도 이미 프리미엄이 왕창 붙어있었다.
사실 1986년 제작된 IBM Model M (1390131) 키보드를 사려고 했으나, 간발의 차로 다른 씹새한테 뺏기게 되고 그 한을 어떻게 풀까 하다가 최근에 맛 들린 번개장터에서 포켓몬 금 알팩을 무려 16만원에 팔고 있길래 냉큼 구입해 버렸다.
마침 중고나라에서 게임보이 컬러 풀박을 16만원에 팔고 있어서 하루에 30을 태우게 되었다. 나로서는 참을 수 없었다. 놓쳐버린 IBM 키보드가 아직도 아른거리지만, 덕분에 지독한 향수병을 생각보다 빨리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.
포켓몬 금도 나름 거저 주고 산 편이긴 한데, 게임보이 컬러의 상태가 그냥
미.쳤.다.
심지어 게시글에서 보였던 잔기스들도 배송되면서 다 없어진 것 같다.
이 기분은 마치 98년 교토의 한 게임가게에서 방금 막 구입한 게임기를 개봉하는 느낌이었다. 간과하면 안 되지만, 이거 엄연히 20세기에 만들어진 제품이다.
16만원 주고 시공간을 초월한 느낌을 같이 산 것이다.
특히 버튼감은 GBA도 한 수 접어야 할 것 같다. A/B버튼은 GBA가 조금 더 쫀득하지만, GBC의 순정 십자버튼이 주는 이 기민한 피드백은 분명히 한 차원 위다.
역시 오리지널은 다르구나 싶다.

포켓몬 금은 다행히도 레포트 저장이 살아있었다.
처음에는 잘 안 보여서 GBA로 하다가, 아이폰 플래시를 댄 채로 GBC로 구동해 보았다.
맞춤복을 입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. 오히려 화면이 짱짱하지 않아서일까?
희미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게임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그토록 원하던 20세기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.
게임기나 게임팩이나 다 상태가 좋아서 그런가, 최근 발매된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. 내 뽐뿌는 언제나 옳았던 것이다.
게임이야 말할 것도 없지.
잠시 돌려본다는 게, 어느새 3시간이나 해버렸다..
물론 어릴 적 추억도 있지만, 이 게임은 내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.
직관적인 디자인, 충격적인 스토리, 몽글몽글한 감성까지 마스터피스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, 게임 속 인물들은 내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 안내해주고 있다. 벌레를 잡는다거나, 낚시를 한다거나, 차력을 한다거나..
남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 쪼대로 산다. 근데 그게 너무 멋있어 보인다.
성공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.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, 순간순간을 즐기며 충실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.
나도 인생을 저렇게 살고 싶다. 뭐가 더 필요한가.
언제부터 인생이란 게 그리 복잡한 것이 된 걸까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