SNS에 뭔가를 올리고 싶지만 용기는 없고,
마침 재작년에 만들어 놓은 홈페이지가 생각나서
그걸 내 SNS로 써먹기로 했다.
마침 몸도 아프고, 한 달간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되는 바람에
3월 말부터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홈페이지를 고쳐 나갔다.
간단한 스케치만 넣어도 AI가 그럴듯하게 뽑아주는 요즘이지만,
세부적인 디테일까지 머릿속 그대로 구현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.
구현도 구현이지만
원하는 그림이 무엇인지 스스로 꿰고 있어야 한다.
어떤 분위기를 낼 것인지, 어떤 기능을 넣고 뺄 건지
크기와 간격은 몇 픽셀이어야 하는지
사소한 결정 하나하나에 납득할 만한 명분이 있어야만 한다.




5일 동안 밥 먹고 코딩만 했던 것 같다.
설계대로 구현도 마쳤고, 슬슬 마무리할 겸
디바이스 별로 테스트를 돌리고 있었다.
레이아웃도 모두 확인했고 다시 맨 위로 화면을 넘기려는데,
젠장 뭔가가 빠져 있었다.
상단바를 탭하면 최상단으로 스르륵 올라가는 일명 ‘Tab to Top’
웹서핑을 자주 하는 사람에게는 필수라고 할 수 있는 기능이다.
CSS와 무관하게 기본 탑재되어 있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,
아무리 탭을 해도, 전원을 껐다 켜도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.
설마 하는 마음에 ChatGPT에게 물어봤다.


이후 ChatGPT에게 뱉어낸 말들은 나라는 인간의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.
세상에 계획대로 한 번에 되는 게 어디있을까?
이후로도 며칠에 한 번 꼴로 변수가 터졌고,
그렇게 5일은 15일이 되고 다시 한 달이 되었다.
코드만 봐도 정신분열이 날 것 같았지만
동시에 홈페이지에 대한 애정도 깊어져 갔다.
Awwwards 같은 곳에 출품할 것도 아니지만
최대한 유려하게 만들고 싶었다. 비디오 플레이어까지도.

우여곡절 끝에 작업을 마무리하고
당장 일렉트로마트로 갔다.
삼성과 애플, LG 등 제조사를 가리지 않고
전시되어 있는 모든 디바이스, 이를테면 데스크탑과 노트북, 태블릿과 휴대폰 등
브라우저를 열어서 모두 주소창에 sonwzn.com을 입력했다.
홈페이지를 만들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,
어느 분기에서든, 어느 기기에서든 내가 설계한 레이아웃대로 띄어지는 것이 중요하다.
마지막으로 Z플립과 Z폴드에서도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
나는 비로소 매장을 떠날 수 있었다.
극내향인을 위한 SNS.
어쩌다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어버린 건지 어이가 없지만
이렇게 된 거 열심히 기록해야겠다.
자신만의 홈페이지를 갖는 것은 끝내주는 일이다.
집값이 미쳐버려서 부동산은 그림의 떡이지만,
1년에 10달러만 지불하면 자신만의 사이버 공간을 만들 수 있다.
정해진 규격이나 용도가 없다.
10평 짜리 창고처럼 쓸 수도 있고 10000평 짜리 미술관으로 쓸 수도 있다.
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능성이 무한하다.
너무 공개적이지도 폐쇄적이지도 않다.
내가 백날 작품을 올리고 일상을 기록하더라도 나를 모르는 사람은 알 수가 없다.
반대로,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이곳을 방문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.
그 미묘한 개방과 폐쇄의 경계가 나에게는 편안함과 설렘으로 다가온다.
1996년도 아니고 2026년이지만
홈페이지는 여전히 매력적이다.
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.
최근에 Codex를 쓰기 시작했는데
이제는 정말 내가 할 게 없는 것 같다.
솔직히 다꾸랑 난이도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.
아무리 봐도 MZ들이 좋아할 요소로 가득한 거 같은데..
닷컴 붐 같은 거 안 오려나.




